전태일 평전
필독서 July 31, 2020고용노동부 직원인데 전태일을 모른다면 창피하겠죠.
전태일은…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60년 남대문 초등학교, 1963년 청옥고등공민학교를 잠깐씩 다녔지만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학업을 계속 할 수 없어 신문팔이, 구두닦이, 손수레 뒤밀이, 삼발이 장사 등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65년 가을 평화시장에 있는 삼일사에 취직을 하면서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평화시장의 참혹한 노동현실을 경험하게 된다. 1969년 재단사 모임인 ‘바보회’를 1970년에는 ‘삼동친목회’를 만들어 청계천 일대의 노동실태를 조사하여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노동청에 제출하는 등 갖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근로조건이 개선되기는커녕 사업주의 횡포와 노동청 등 정부당국의 멸시만 이어졌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은 평화시장 앞길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치르며,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를 외치며 분신항거 하였다.
전태일이 근로감독관에게 쓴 편지가 남아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여러분께서 안정된 기반 위에서 경제 번영을 이룬 것은 과연 어떤 층의 공로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여러분의 애써 이루신 상업기술의 결과라고 생각하시겠습니다만은 여기에는 숨은 희생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즉, 여러분들의 자녀들의 힘이 큰 것입니다.
성장해 가는 여러분의 어린 자녀들은 하루 15시간의 고된 작업으로 경제발전을 위한 생산계통에서 밑거름이 되어 왔습니다. 특히 의류 계통에서 종사하는 어린 여공들은 평균 연령이 18세입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여러분들의 전체의 일부입니까? 가장 잘 가꾸어야 할, 가장 잘 보살펴야 할 시기입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느 면에서나 성장기의 제일 어려운 고비인 것입니다.
이런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동심들을 사회생활이라는 웅장한 무대는 가장 메마른 면과 가장 비참한 곳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메마른 인정을 합리화시키는 기업주와 모든 생활 형식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말살 당하고 오직 고삐에 메인 금수처럼 주린 창자를 채우기 위하여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곧 그렇게 하는 것이 현 사회에서 극심한 생존경쟁에서 승리한다고 가르칩니다. 기업주들은 어떠합니까? 아무리 많은 폭리를 취하고도 조그만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합법적이 아닌 생산공들의 피와 땀을 갈취합니다. 그런데 왜 현 사회는 그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는지 저의 좁은 소견은 알지를 못합니다.
내심 존경하시는 근로감독관님. 이 모든 문제를 한시 바삐 선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1969 . 12/19일 전태일
전태일에 관한 여러 영상자료들이 있는데, 그 중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라는 영화가 가장 유명합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전태일 재단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사랑을 시작하다 - 전태일
지식채널e - 평화시장 재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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